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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보가드로의 수

by GNKR 2020. 5. 3.



1. 돌턴의 원자론

인류가 화학반응에 관한 기본 원리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후반부터라고 볼 수 있다. 1774년 라부아지에는 화학 반응에서는 반응 전후에 전체 질량에 변화가 없다는 질량보존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뒤이어 1779년 프루스트는 화합물에서 이를 구성하는 각 성분 원소의 질량비는 항상 일정하다는 일정성분비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돌턴은 이들 두 가지 법칙을 완벽히 설명하기 위하여, 고대 그리스 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가 사라졌던 원자론을 다시 부활시켰고, 1803년에 화학계에 한 획을 그은 돌턴의 원자론을 발표하였다. 돌턴의 원자론은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모든 물질은 더 이상 나눌 수 없고, 파괴될 수도 없는 원자로 되어있다.
2) 한 원소의 원자는 크기나 성질이 동일하다.
3) 화합물은 두 가지 이상의 원자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4) 화학반응은 원자들의 재배열이다.

이후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원자가 양성자, 중성자, 전자 등 보다 간단한 기본입자로 다시 쪼개질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하나의 원소에 서로 다른 원자, 즉 동위원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돌턴의 원자론은 일부 수정되었다.


2. 아보가드로의 가설

돌턴은 수소 원자의 질량을 1로 설정하여 여러가지 원자들의 상대적 질량, 즉 원자량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그의 방법 자체는 오늘날에도 타당하지만, 원자론을 구성함에 있어 한가지 오류가 있었다. 그는 물의 화학식을 HO, 암모니아의 화학식을 NH로 가정하고, 산소와 질소의 원자량을 각각 8과 5로 구해냈다. 화학식의 구조가 애초에 틀린 관계로 산소의 원자량은 실제 값의 16의 절반으로, 질소의 원자량은 실제 값의 1/3로 구해졌다. 이렇게 처음부터 잘못 가정된 화학식을 바탕으로 다른 원소들의 원자량을 계산해내다보니, 실제 값과 큰 차이를 낼 수 밖에 없었다. 

1808년 게이-뤼삭은 같은 온도와 압력 하에 있는 기체들이 반응할 때, 기체 부피들 사이에는 항상 간단한 정수비가 성립된다는 "기체반응의법칙"을 발견하였다. 예를 들자면 항상 2 부피의 수소기체와 1부피의 산소 기체가 반응하여 2부피의 수증기를 생성하며, 1부피의 질소 기체와 1부피의 산소기체가 반응하여 2부피의 일산화질소 기체를 만든다. 

아보가르도는 1811년에 새롭게 과감한 가설을 만들게 되는데, 그 내용은

1) 같은 온도, 압력 하에서 같은 부피 내에 존재하는 기체 입자(분자)의 숫자는 기체의 종류에 상관없이 동일하다.
2) 기체 분자는 2개 또는 그 이상의 기본 입자(원자)로 구성되어있다.

와 같은 당시로서는 과감하고 진취적인 아보가드로의 가설을 만들게 된다. 아보가드로는 첫 번째 가설을 기초로 기체의 밀도를 비교함으로써 분자의 상대적 무게를 구해냈는데, 산소와 질소의 원자량을 각각 15 (실제는 16)와 13(실제 14)이라고 제안하였다.

아보가드로는 게이-뤼삭의 실험결과를 통하여 물분자는 HO가 아닌 H2O이며, 수소, 산소와 질소 기체는 이원자 분자 즉 H2, O2, N2 의 형태로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통해 아보가드로는 암모나이 기체의 밀도로부터 암모니아의 화학식은 NH가아닌 NH3 라고 주장하였다.

당시에 가설에 불과했던 아보가드로의 제안은 옳다는 것이 증명되어 아보가드로의 법칙으로 확립되었지만, 당시 화학자들은 이 가설에 대해 당시 화학적 방법에 의해 더단순한 물질로 분해할 수 없는 물질인 원소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없었고, 원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 입자인 원자와 두 개 이상의 원자가 강한 힘으로 서로 결합하여 하나의 독립된 입자로 행동하는 원자 집단인 분자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없었기 때문에 반대하거나 수용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많았다. 또한 돌턴의 실수, 오류에 의해 여러 원소의 원자량이 실제와 다르고 제각각이였기 때문에, 화합물의 화학식도 다 달랐고, 이는 화학계의 혼돈으로도 이어졌다. 

아보가드로의 가설은 이후에 칸니자로의 노력으로 1800년대 후반부터 인정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그동안 지속되었던 화학계의 혼돈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특히 멘델레예프는 아보가드로의 가설을 바탕으로 원소들의 원자량을 다시 수정하여, 1869년에 원소 주기율표를 발표했다.


3. 아보가드로의 수

19세기 후반 화학자들은 물질의 양을 그램-분자 또는 그램-원자라는 용어로 표현했는데, 1그램-원자 또는 1그램-분자는 원자량 이나 분자량에 대한 질량을 나타내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산소는 분자량이 32이므로 1그램 분자는 32g이다. 아보가드로의 수는 처음에는 1그램 분자에 들어있는 분자의 개수를 의미했지만, 현대에는 아보가드로의 수만큼의 입자 묶음을 뜻하는 말로 몰(mole)이라는 용어로르 사용한다. 

아보가드로의 수는 페랭이 브라운 운동의 실험에 대한 관찰로 처음 구하게 되었다. 브라운 운동은 액체나 기체에 분산된 입자가 지그재그로 무작위 운동을 하는 것으로, 식물학자 브라운이 1827년에 물에 분산된 꽃가루를 현미경으로 관찰하여 처음 발견하였다.

1800년대 후반에는 기체의 몰 수, 압력, 부피, 절대 온도 사이에는 PV=nRT 라는 공식이 성립된다는 것이 알려졌다. 한편 볼츠만은 기체 운동에 대한 이론을 전개하여 PV=NkbT라는 식을 얻었다. 아인슈타인은 1905년에 입자의 브라운 운동은 용매 분자와의 충돌에 의한 것으로 가정하고, 기체 운동이론을 적용하여 브라운 운동에 관한 이론식을 유도하였고, 이 식에 따르면 반경을 아는 입자가 점성도를 아는 매체에서 보이는 브라운운동을 관찰하여 Kb 갑을 측정할 수 있다.

페랭은 자황나무진 가루에서 같은 크기의 입자를 분리하고, 이 입자의 브라운 운동을 현미경으로 관찰하였고, 이를 아인슈타인이 유도한 이론식에 적용하여 Kb를 구하고, R값을 이 값으로 나누어 아보가드로 수를 계산해냈다. 페랭은 아보가드로의 수를 구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기도 하였다. 페랭의 이 실험으로 100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원자와 분자에 관한 혼란은 마무리 되었고, 분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애초에 페랭은 아보가드로의 수를 산소 1-그램 분자(1몰)에 들어있는 산소 분자의 개수로 설정하였으나, 지금은 정확히 12g의 순수한 탄소 동위원소 C-12 중에 들어 있는 탄소 원자의 수와 같은 수로 정의하고 있다. 원자 또는 분자 1개의 순수한 무게는 1그램 원자량 또는 1그램 분자량을 아보가드로의 수로 나누면 계산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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